“1,300m x 40m 폭에 달하는 대형 해변인 처지에 썰물 때만 존재하고 밀물 때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해변”

번역은 글을 다루는 일이죠. 그런데 번역에 시청각 자료가 필수적인 경우가 있을까요? 그리고 미술번역에 있어서 시청각 자료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번역에 이미지 및 시청각 자료를 적극적으로 참고해야 한다는 발상을 처음 접한 것은 이희재 번역가님의 책 <번역의 탄생>에서였습니다. 챕터 전체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책을 들춰보지 않아도 아직까지 기억나는 부분이 있어요. 건축 관련 글을 번역하는 중 해당 글에 언급된 건물의 구조가 잘 이해되지 않아서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그 건물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는데요. 물론 유명한 건축물이나 사료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 아니라면 유튜브까지 동영상이 올라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항상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닙니다. 옛날이라면 비슷한 경우를 접했을 때 도서관에 가서 건축물의 도면을 찾아보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번에 번역한 <요시고 사진전: 따뜻한 휴일의 기록>에서는 동영상까지는 아니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많은 자료 조사가 필요했습니다. 꼰차 해변(the beach of La Concha)이라는 독특한 해변이 언급되었기 때문이에요. 사진작가 요시고의 작품 중에는 항공사진 혹은 드론을 활용한 것처럼 보이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위쪽 섬네일에 나온 헤엄치는 소년의 사진도 결코 땅에서 촬영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각도의 사진이죠! 하지만 이 모든 사진들은 전부 땅에서 찍은 것이랍니다.

꼰차 해변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아주 큰 해변이에요. 모래사장의 크기는 길이는 1.3km에 폭이 평균 40m인데 모래사장 전체가 방파제가 아닌 높은 벽으로 막혀 있답니다. 보통의 해변과 달리, 이곳에서는 밀물 때에 평균 40m에 달하는 모래사장의 전부가 물에 잠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바닷가를 따라 있는 보행로도 수면과 비슷한 높이가 아닌 높은 방벽 위에 있답니다.

저에게 주어진 글은 요시고의 인터뷰였는데, 그는 인터뷰에서 어떻게 이런 사진들이 가능했는지를 저처럼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지 않았어요. 요시고는 꼰차 해변이 있는 도시, 산 세바스티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 그런 설명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겠죠. 단지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진은 왜 굳이 벽까지 세우면서 막아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지 않으니까요. 산 세바스티안 관광청까지 뒤진 후에야 꼰차 해변은 “1,300m x 40m 폭에 달하는 대형 해변인 처지에 썰물 때만 존재하고 밀물 때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해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꼰차 해변은 이렇게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해변이랍니다!
(Image source: viator.com)

저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번역에 관한 이런 구차한 이야기도 누군가는 재밌게 읽어주지 않을까 하면서 길게 쓰게 되네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혹시 번역에 관해서 궁금한 점,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고객:그라운드시소
전시기간:2021년 6월 23일 ~ 12월 5일
번역 방향:한→영
업무:– 전시도록 텍스트 및 작가 인터뷰 번역
– 전시장 내부에 사용된 텍스트 번역
– 보도자료 번역(트랜스크리에이션)
(이미지 제공: 그라운드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