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널리 인정받는 날만을 기다려왔던 그지만, 정작 유명세가 코앞에 다가오자 반 고흐는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반 고흐에게는 생전에 유명해질 기회가 있었습니다. 반 고흐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건 우리 현대인들만 아는 비밀이 아니었더라고요. 동시대의 화가와 미술인들도 보는 눈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살할 즈음 반 고흐는 “떠오르는 신인”으로 주목받고 있었죠.
세상에 널리 인정받는 날만을 기다려왔던 그지만, 정작 유명세가 코앞에 다가오자 반 고흐는 흔들리기 시작했더라고요.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잖아요.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죠. 반 고흐의 정신은 이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정신병의 종합세트 같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전시를 번역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반 고흐가 요즘 태어났더라면 좋은 정신과 약을 먹고 오랜 커리어를 누렸을텐데. 그림도 훨씬 많이 남기고.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구체적인 정황은 이렇습니다. 자살하기 얼마 전 반 고흐는 동생 테오와 크게 말다툼을 했어요. 테오는 반 고흐 그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화랑을 창업하자고 제안했는데 반 고흐는 여기에 격렬히 반대했죠. 며칠 후 반 고흐는 스스로에게 총을 쏩니다. 동생 테오는 형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는데, 형을 너무 몰아붙여서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이 병세를 악화시켰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번역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너무 옆길로 새어 버렸네요.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는 사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탄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은 “여러 연령층이 모두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불가능한 과제를 지향하고 있었거든요. 이런 문체를 구현한다는 것 자체가 난제인데 심지어 주제는 반 고흐의 삶이에요. 자해, 자살, 정신병, 매춘 등의 무거운 소재를 가지고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전시를 만들어라. 불가능한 명제죠.
제가 존경하는 번역가 한 명은 이런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철학적으로는 불가능한 과제일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정답에 무한히 가까워질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도 이런 신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미술관에서 준 영문 텍스트는 친근하면서도 소탈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무거운 내용을 다룰 때에는 동화를 읽는 느낌이 들었어요. “옛날 옛적에 이런 일이 있었단다,” 같은 문장처럼, 사건과 충분한 거리를 두되 다정하게 서술했다고 해야 할까요?
모든 글에는 나름대로의 결이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다》는 결은 단순하지만 다루기는 까다로운 프로젝트였죠. “한국어와 영어는 아주 거리가 먼 언어인데, 원문의 문체를 살리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힌트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어요. 원문의 결을 따라가면 번역문에도 비슷한 개연성이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거든요. 이것도 문체의 재현에 이르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고객: |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 |
전시기간: | 2019년 4월 19일 ~ 8월 25일 | |
번역 방향: | 영→한 , 한→영 | |
업무: | – 전시도록, 오디오 가이드 및 기타 텍스트 최종 감수 – 장편영화 ≪빈센트 반 고흐: 새로운 시선≫ 및 단편 다큐멘터리 5편 스크립트 번역 및 자막화 – 전시 내부 인터랙티브 앱 번역(로컬라이제이션) – 보도자료 및 홍보물 번역(트랜스크리에이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