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공부했던 게 삶에 도움이 되었니?”라고 물어본다면, 미대생이 자신에 대해 솔직해야 하는 순간을 좀 더 자주 마주치게 되기는 해요.

한 대학교의 졸업전을 번역하는 것은 이번 프로젝트가 처음이었는데요. 그동안 전시를 번역하면서 한 번도 소홀했던 적은 없다고 자신하지만, 졸업반 학생들께서 손수 번역해서 보내주신 23개의 작가노트를 감수·윤문했던 일은 프로젝트가 끝나고 반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서양화과를 전공한 제 경험으로 말하면, 졸업반으로 보내는 1년 그리고 특히 졸업하기 직전은 가장 절실한 시기이면서도 가장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절실함은 지금까지 해온 작업에 나 자신이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해서 그러했고, 불안함은 앞으로 할 모든 작업이 바깥세상의 시선 속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점에서 그러했습니다. 미대 안에서는 조금 덜 진지해도, 조금 덜 현실적이어도 괜찮으니까요.

미술번역을 전문으로 하는 저는 동기들에 비해 미술에 가까이 남아 있는 편입니다. 작가를 계속 하는 친구는 극소수이고, 제 소감으로는 미술계의 일부로 남아 있는 것보다 아예 다른 길로 들어서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아요.

“미술 공부했던 게 삶에 도움이 되었니?”라고 물어본다면, 미대생이 자신에 대해 솔직해야 하는 순간을 좀 더 자주 마주치게 되기는 해요. 그렇다고 그게 꼭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않으면 금세 자의식 과잉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크게 만족하고 있어요. 저는 작품 감상을 무척 좋아하고 작가들을 만나는 것도 무척 좋아하는데, 미술번역가라는 직업은 이런 부분을 확실히 보장해주니까요. 앞으로도 계속, 오래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고객:고려대학교 디자인조형학부 조형미술과
전시기간: 2021년 1월 15일 ~ 24일
번역 방향: 한→영
업무:– 졸업전시반 학생들이 각자 초벌번역한 23개 작가노트의 윤문 및 최종 감수
(이미지 제공: 고려대학교 디자인조형학부 조형미술과)